<창칼 9> 본능과 진화 사이에서
<창칼 9> 본능과 진화 사이에서
(부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의식의 무거움)
아주, 아주 오랜만에 딸, 빛난별을 데리고 동사님 주간 Huddart 공원 토요 산행을 참가했다. 멀지만 산악회 바자회를 한다는데 빠질 수 없잖는가. 빛난별이 중학교, 고등학교 때 산행에 종종 같이 우리 산악회 산행에 같이 다닌적이 있어 산행지에 도착하니 빛난별을 알아보는 많은 회원님들이 반갑게 딸을 맞이해줬다. 산행 길에서 빛난별은 요즘 한국어 실력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열심히 옮겨다니며 이 회원, 저 회원님들과 한국어로 얘기 꽃을 피웠다.
행복한 산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1년 간 발을 끊었던 H-Mart에 들렀다. 삼겹살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게 다음 사건의 화근이 될 줄이야.
마트를 나오는 데 날씨가 95도가 넘게 뜨거워 빛난별이 덥다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하여, 늘 다니는 101번 고속도로 대신에 17번 고속도로를 이용, 산을 타고 넘어 집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H-mart서 17번으로 들어가는 시내 2 마일 길이 완전히 차로 뒤덮여 평소 5분 걸리는 거리가 1시간 이상 걸렸다. 이런 왕재수!! 날씨도 더운데 길은 너무 막히고 모두들 한 칸이라도 더 앞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치는 상황에서,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17번 고속도로 입구까지 한 블락을 남겨 놓은 지점까지 겨우 겨우 전진했다. 이제 조금만 가면 이 지옥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희망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침 파란불에 사거리가 뚫려서 앞차를 따라 사거리를 통과하는 찰나에 앞차가 횡단보도를 넘어서자 마자 서버렸다. 파란불인데도 더 나가지 못 하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서 횡단보도 바로 전에 서버린 내차. 모퉁이에서 서서 노려보던 얍쌀하게 생긴 백인 경찰이 다가오더니 사거리를 막고 있다면서 차를 옆으로 빼란다. 이런 젠장. 이렇게 엄청 막히고 차들이 여기 저기서 얽히는 상황에서 통제와 안내를 해도 모자랄 판에, 교통 통제는 아랑곳 하지 않고 티켓을 뗄 표적만을 노리다가 잽싸게 사냥감을 발견하고 낚아채는 경찰. 8년간 온갖 산행을 다녔지만 베이 지역 시내에서 딱지를 뜯기는 건 처음이었다.
17번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면…, 불필요하게 한국 마켓에 들리지 않았더라면…, 비싼 기름값을 들여 이렇게 멀리까지 산행을 오지 않았더라면…, 온갖 가정법 문장들이 난무하며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월말이 다가옴에 따라 딱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인지, 혼란한 교통 상황을 이용해 티켓을 끊어대는 무자비한 백인 경찰의 모습, 나는 정작 옆에서 끼어드는 차를 양보하는 바람에 횡단보도를 통과하지 못하고 한 차가 늦어진 것이지만 실은 사거리를 막은 것도 아니었다. 선의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이, 그리고 내가 항변을 할 새도 없이 인정사정 없는 권위적인 태도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찍소리도 못하게 제압하고 딱지를 끊는 그 경찰관의 태도는 내가 ‘동양인이라서 더욱 먹이감으로 좋았겠지'라는 피해의식적인 생각까지도 불러일으킬만도 했다. 과거에 동부에 살 때 권위적인 경찰들한테 수모를 당했던 기억들이 저 기억의 바닥에 묻혀졌다가 스물스물 올라오면서 배와 가슴을 저리게 했다. 실은, 나자신이 미군 부대에서 군사경찰(MP)로 근무할 때 배운 것은 교통딱지 이전에 교통 상황이 복잡할 때는 그 상황을 정리해서 안전과 질서를 담보하는 것이 제 일의 업무라고 배웠었다. 그 경찰관이 안전과 질서는 팽개치고 딱지 하나를 떼느라 20여분의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사거리는 차로 더 뒤덮이고 얽히면서 일대가 대혼란을 이루고 있었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은 많은 본능들을 극복하거나 초월하는 힘을 길러왔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진화가 이뤄져도 극복이 잘 안 되는 본능이 있는데 그건 동물시절부터 이어져 온 생물학적인 본능이란다. 그 중에서 생존 본능, 번식의 본능, 그리고 공동체에서 남을 누르고자 하는 힘에 대한 본능(즉, 권력에 대한 본능) 등이다. 내가 그 경찰의 태도로부터 느꼈던 것은 맡은 직분을 충실히 하는 공무원의 성실함보다는 바로 이 힘에 대한 원초적 본능을 느낀 것이다. 직분과 주어진 법권한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누르는 과잉 통제와 힘을 갈구하는 그런 본원의 본능 말이다.
진화 과정에서 인류는 메타인지(=자기를 대상화해서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인지력)를 발달시켜 오면서, 인류 사회는 약자를 배려하는 ‘부드러운 권력자들’이 있어 왔고 그 덕분에 서로 잔인하게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많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완전 멸망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 권력이 언제든 강압과 폭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자제하는 힘도 키워 온 셈이다.
만약, 이 본능만이 넘치는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는 그야말로 불행해질 것이다. 최근에 미디어를 통해, 우리 가까운 어느 사회의 지도자도 이 본능에만 너무 충실한 나머지 공익이라든지 사회 구성의 안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들을 접한다. 서열 1등만을 위해서는 어떠한 위선도, 부정도 다 저질러도 그 힘으로 다 무마할 수 있다는 믿음, 그 우두머리에 대한 집착과 집념은 우리 먼 조상인 고릴라 사회에서 부터 유지해온 본능을 연상시킨다. 고릴라 사회에서는 다른 고릴라가 우두머리 고릴라를 넘보다가는 바로 찍혀서 죽음을 당하거나 쫓겨난단다. 공포와 힘으로 무리를 지배하기 위함이다. 내가 언젠가 돌아갈 그 사회가 작금에 바라보기 딱할 정도로 힘을 구가하는 본능만이 지배하는 사회로 회귀해 가는 듯해서 멀리서 바라 보는 나로서는 너무 슬퍼지고 우울해 진다.
지난 산행에서 ‘그냥 생긴대로 살아라’라는 반농담, 반진담 말을 들었다. 괜히 애쓰지 말고 편하게 쉽게 살라는 좋은 의도와 뜻을 전했을 거라고 믿어진다. 그런데 한 발짝 더 들어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본능에 충실해서 살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본능으로 살아서 좋을 때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진화된 인류로서 본능을 잘 통제하면서 살아가야만 더 진화된 사피엔스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 강한 힘이 지배하는 옛날 사회로 거슬러 올라갈 수록 ‘괜히 나서다 다치니 나대지 말고 강자의 힘에 순응하면서 살아라’를 우리 조상들은 외쳐왔다. 가끔 공익 의식이 강한 돌아이(?)들이 강한 힘에 대항하다가 부러진 사례도 많았다. 뇌과학에서는 두려움을 관장하는 편도체가 예민하게 발달돼 있는 사람들은 안정에 대한 희구가 커서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편도체가 덜 예민한 사람들은 자기 안위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공익을 먼저 생각하는 진보적 성향이 있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접한 적이 있다. 또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안정 희구는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고도 하고. 하지만, 그게 힘에 대한 본능이든, 수익과 돈을 추구하는 본능이든 우리는 메타인지가 있어 그 본능을 어느 정도 굴복 시키고 개인의 눈 앞의 이익을 넘어 조금이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생각하고 또 공정한 사회를 이루는 꿈도 꾼다.
그 단순한 교통 딱지 사건이 나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들었다. 배려해야 할 상황에 대한 인식도 없이 관직의 힘을 빌려 고지식하게 소시민을 힘으로 제압하며 자기 힘을 과시한 그 경찰의 본능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너무나 성실히 나찌 정부의 관직에 충실함으로써 결국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한 어느 고지식한 독일 공무원을 생각나게 한다. 이런 본능은 내 안에도 똑같이 들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심어진 이런 ‘생긴 대로 사는’ 본능을 뛰어 넘어 한 단계 진화적인 도약을 하여 한 차원 높은 인간이 되고 싶은 의식도 강하게 들어있다. 오늘도 그 경찰관을 생각할 때,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축적된 불안감과 두려움이 내안의 집단 무의식 저 밑에서 올라는 오는 것을 감지하면서, 나의 메타의식은 또한 그 본능적 무의식에 굴하지 않고 또렷하게 깨어나서 용감히 살아있으려는 의지도 공존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해 준다. 더불어 이를 계기로 생물학적 본능을 뛰어 넘어 좀 더 진화해 가는 인류와 세상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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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지난 주말에 빛난별(민지)하고 아마존 프라임으로 고릴라 영화, Rampage (광란) 를 봤는데 메타인지가 있어서 사람하고도 감정도 공유하고 수화로 소통도 하는 아주 진화된 고릴라 이야기이었어요. 액션물인데도 스토리가 나름 탄탄했습니다. 별표 5개였고요. 추천합니다. 아, 전 집에 TV도 없고 네플릭스 계좌도 없어 파피님이 언급하신 영화는 당연 못 봤지요. 나중에 다른 플랫폼으로 나오면 찾아서 함 볼게요.
윗글은 제가 겪은 속쓰린 경험을 얘기하면서 은밀히 하고 싶은 메세지를 깔아봤어요. 파피님은 파악하셨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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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님~
뜨거운 날씨와 겹친 해프닝으로 피로감이 올라가셨겠지만 예쁜 따님과의 흐뭇하셨을 산행의 추억이 있어서 훗날? 웃으시며 얘기하실 일화를 남기셨네요~
억울한 딱지까지 받는 상황에서 메타인지가 폭발하신 창공님의 진화하심에 거리감이...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ㅎㅎ
경찰도 때로는 규칙보다는 이해의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다면 더 감사할텐데요~
상상했던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놀랍지만 두렵기도한 세상에서 적자생존이 아닌 친화력과 협력으로 다정한 것이 살아남기를 저도 꿈 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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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님께서 제가 하고자 하는 아래 깔린 메세지들을 알아채 버리셨네요. ^^ 공감 감사 드립니다.
말씀마따나 허접한 글들을 자꾸 올려 거리감 조성을 하는 것 같아 자중해야겠다 생각도 합니다만 내일 일은 저도 몰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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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님 요산님 글을 참 잘쓰십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실력발휘 좀 해 주세요
창공님 다른 큰사고를 피할려고 그리로 갔을수도 있다 생각하시고 힘내세요 사는게 다 그렇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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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은, 저도 그렇게 빛난별하고 같이 공유했답니다. 사고가 안 나서 안 다친 건만도 감사해야 한다고요. 격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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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처에 힘의 본능이 우세하게 득세하는 곳에서 공정 사회를 지향하는 창공님의 메타인지가 있으니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참 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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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새로운 길을 찾아 다닐 수록 뇌가 좋아지는가? 우리 산악인들에게 아주 흥미한 내용이라 링크를 올려 봅니다.
뇌 속에 장소 세포가 있어 세로운 장소를 찾아 다닐 수록 뇌에 신경 매핑(mapping)이 일어나서 뇌신경들이 자란다. 지도 보기 훈련도 뇌 건강을 좋게하는 길인 것 같네요. GPS같은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길 찾기 능력을 잃어버리는 현대인 들은 치매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하고요. 한국에서 치매로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 신고가 일 년에 백만 건이 넘는다고 하고요. 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 1부: https://youtu.be/h81_t7EPQEc
방황하고 길을 잃어야 뇌가 진화한다. 이와 관련해서, 원글에서 짧게 언급된, 모험을 좋아하고 두려움의 영향을 덜 받는 사람들이 진보적 성향, 그 반대로 두펴움을 회피하려 하고 안정을 희구하는 사람들이 보수적 성향을 갖는다는 것이 바로 뇌에 기능에 의한 것이고, 길을 잘 찾는 사람, 새로운 길을 자꾸 걸어 보는 사람이 인생의 길도 잘 찾아 간다. 새로운 경험을 계속 추구하는 사람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 등.. 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 2부: https://youtu.be/5nPrQHhVb9w
아, 글고 고릴라 본능과 권력에 대한 재미있는 얘기도 있어요. 실은 여기에서 나오는 얘기를 많이 참고해서 이 글을 썼음도 밝힘니다. ^^ : https://youtu.be/38rpLrkt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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