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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칼 36>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얄팍함
그리고 무게감 

 
남자는 가벼운 연애를 좋아해서 한 여자말고도 또 다른 여자와도 만나 연애를 즐기고, 그를 좋아하는 여자는 그 남자만 바라보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펼친다. 또 다른 남자는 한 여자에 대한 순수한 이상적 연애를 꿈꾸지만, 그가 좋아하는 여자는 판에 박힌 인습적인 삶을 싫어하는 여자라 자유스러운 연애와 개방적인 삶을 추구한다.
 
이건 드라마 속 얘기인가, 실제 얘기인가?
물론, 둘 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다름 아닌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나오는 네 명의 주인공 토마시와 테레자; 프란츠와 사비나)이 추구하는 서로 다른 삶의 단면이다. 요즘은 드라마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뻔하고 흔한 소재일지 모르나, 1984년 이 소설이 나왔을 때는 조금은 당돌한 내용이었다. 이 소설에서 밀란 쿤데라는 누구의 삶의 방식이 옳고 그르냐의 판단을 자제하면서 현대인의 삶의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고 그 무게와 가벼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단지, 각 인물의 강점들도 보여주지만, 네 명 모두의 취약점도 보여 줌으로써 어느 누가 옳고 그르다기 보다는 이들 삶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더불어, 이 소설에는 우리 삶의 의미, 고착화된 사고와 변화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양심에 대한 질문도 같이 던진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가 한 번쯤은 겪거나 생각해 보는 문제들이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이 존재 의미에 대한 질문은 철학자나 신학자, 그리고 다양한 인문학자들이 수세기 동안 고민해 온 질문이다. 하지만, 누구나가 살아가면서 던져 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개인마다 자라온 배경과 경험에 따라 그 대답이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모두는 삶의 목적과 가치를 찾고 싶어한다. 의미가 없을 때 우리는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하여, 어떤 사람들은 삶의 무게를 두기 위해 종교나 신앙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 이들은 그런 무게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종교적 혹은 이념적 믿음에서 위안과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많다. 이는 존재 근본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가져다 주는 이점이 있지만, 쉽게 사고의 고착화로 유도하여 경직된 삶을 살게하는 딜레마를 가져다 준다. 이와는 반대로 모든 전통과 인습에서 이어지는 조직적 믿음과 이념을 타파하고 벗어나는데서 더 역동적인 의미를 찾는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큰 해방과 자유를 느끼지만 지속적인 헌신에 있어서는 취약점을 갖게 된다. 이 경우, 어떤 삶이  더 얄팍하고 더 무거운지를 이름붙이기는 쉽지 않다. 특히, 다양성이 공존하는 현대적 삶이라는 문맥에서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다. 사랑의 의미를 두지만 사랑을 하는 방식도 무겁게 하기와 가볍게 하기 사이에 방황을 한다. 특히, 현대인의 사랑은 어떤가? 이전에 성행했던 낭만적인 사랑의 코드는 ‘운명적 만남'이었다. 그 운명적 만남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전혀 다른 성장 배경에도 죽음도 불사하는 운명적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코드에 목을 매달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추구해왔다. 근데, 현대에 와서는 그 낭만적 사랑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적 사랑은 ‘운명'이라는 코드를 찾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찾는다해도 그 코드를 하나 가지고 사랑을 지속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만큼 사랑의 코드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서로 지속가능한 하나의 공동 코드를 찾기도 더욱 어려워져 버렸다. 그래서 연인으로서의 사랑을 찾기가 아주 어려워진 시대가 되어 버렸다. (박구용 교수, 링크)
 
가족이나 관계에서 의미를 찾기도 하지만 오늘날 가족관과 친구관도 엄첨나게 변했다. 가족에게 모든 걸 희생하고 의지하던 시대도 지났다. 자식과 부모의 역할과 관계도 크게 바뀐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 예로,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까칠하게 살기를, 나이들어서는 친구 없이 당당히 혼자 살라는 지침을 주는 쇼펜하우어가 요즘 한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링크 1링크 2). 그간, 염세주의자로 오인을 하고 묻혀졌던 이 ‘긍정' 철학자의 신선한 안목이 소환돼서 새롭게 조명이 되고 있는 건 그만큼 바뀐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필자도 요즘들어 쇼펜하우어의 까칠하지만 긍적적인 행복관에 많은 공감을 하는 중이다. 
 
이런 가치의 변화가 가져온 혼란 외에도, 우리는 끊임없는 정보와 자극의  폭격을 받고 있다. 더불어, 우리의 가치관과 신념은 끊임없이 변화를 향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런 격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방향을 잃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런 격랑에 찬 항해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은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의 균형을 찾는 데 있다고 본다. 우리는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홀로 있음을 즐기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의 무거움과 얄팍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시 말해, 가벼움도 무거움도 어느쪽 하나만을 택했을 때 우리의 삶의 색깔은 너무 단조롭거나 위험해 질 수 있다. 
 
이런 변화무쌍하고 불안한 항해 과정에서 양심은 중요한 나침반과 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적인 도덕적 잣대가 아니고 스스로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해주는 내면의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양심의 목소리보다 우리의 욕망이나 이익에 대한 희구가 더 커져 양심을 발휘하기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이런 사태를 대비해 우리는 평소에 자성과 성찰의 힘을 키워둬야 한다. 명상과 같은 집중과 관찰의 통합과정을 통해 자기 객관화 힘을 늘리고  자기의 행동과 생각을 관조할 수 있는 메타 인지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삶은 가벼울 수도 있고 무거울 수도 있다. 때로는 가벼워서 날아갈 듯하고 때로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고,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고착된 사고방식과 고정 관념에도 도전하며 이에 얽매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유연한 지성과 힘을 기를 때 의미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이전에 필자가 설파한 ‘경계의 삶을 사는 초인의 삶'과도 상통하는 얘기다. (이전글, 링크,).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우리에게 깊은 철학적 질문들을 던지며,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가벼움과 무거움, 양심, 고정된 사고와 고정 관념, 그리고 신념에 대한 문제들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인지 고민해 보게 한다. 결국, 의미 있는 삶은 자유와 책임, 자기 성찰과 양심에 바탕을 둔 도덕적 책임, 열린 마음과 유연한 사고를 견지한 가운데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추구해 나갈 때 이루어진다고 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토마시 혹은 사비나의 가벼움과 프란츠 혹은 테레자의 무거움의 경계에 서서 이들 모두를 아우르고 초월하는 경지로 나아가는 것을 지켜본다.
 

 

참을 수 없는 존재 4.jpg

 

  • profile
    창공 2024.06.20 18:54

    "사랑은 너무 어려워~", 이 글에서 인용한 박구용 교수의 재미있는 썰~

     

  • profile
    창공 2024.06.20 18:56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저자 강용수 교수의 짦은 영상:

     

  • profile
    창공 2024.06.20 20:59

    "참을 수 없는 xx의 가벼움"을 7분 만에 읽기:

     

     

  • profile
    YC 2024.06.20 22:37

    덕분에 예전에 이 책을 읽었던, 또 영화화 한 프라하의 봄에 대한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책을 읽던 10대 때는 잘 이해 안되는 어른들의 이야기였습니다 .

    영화를 봤던 20대에는 알 것 같기도 했고

    나이 든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원제를 보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맞는 것 같습니다 

    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

    미묘한 차이지만 참 다르게 느껴집니다  


    Happy ending인지 sad ending인지 모호한 마지막 장면은 비오는 날 운전하면 가끔 떠 오릅니다

    지붕뚫고 하이킥 마지막회가 이 장면을 오마주한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교훈은 빗길 안전 운전이겠지요. 😅

  • profile
    창공 2024.06.23 17:24

    어차피 수식어를 어디에 붙여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The Unbearable Lightness of Existence (원재 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는 이중적인 해석이 다 가능하다고 보는데,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는
    말씀하신 것처럼 뜻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즉, 이야기의 내용으로 보아 인간 존재 자체가 참을 수 없게 가볍다기 보다는
    인간의 "가벼운 존재"가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는 뜻에서 후자의 번역이 훨씬 더 적절해 보이는 것 같고,
    그래서 책 제목도 잘 붙여졌다고 생각됩니다.

    이 소설의 내용을 많이 반영한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에서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비극을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체코의 민주화 운동이 소련의 침공으로 좌절되는, 비극적 시대적인 상황을 나타내기도 하고요. 
    하지만 안개가 거치면 청명한 날이 펼쳐지듯이 나은 미래가 곧 오리라는 암시도 깔려있지 않나합니다. 

    이런 저런 연상으로 이어지는 와이씨님의 특유의 연상 댓글, 늘 지평을 넓혀 주십니다. 

  • profile
    모네 2024.06.21 09:01

    스무살의 어느 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제목과 작가 이름에 매료돼서 망설임 없이 구입했고 단숨에 읽었습니다. 

    한국에서 출판될 때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대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으로 바꾼 결정이 판매와 인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저같은 사람들이 많았나봐요^^ 

    토마시는 가벼움을 추구하며 얽매이지 않는 삶을 원하지만 그의 곁에서 무거움을 통해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테레사에게 연민을 느꼈었죠. 

    인물들의 삶에 담긴 가벼움과 무게 사이의 긴장감은 타인을 배려하며 진정성 있게 살아가는데 섬세한 균형이 필요함을 일깨워 줍니다. 공감을 키워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도덕적 정직성을 유지함으로써 모든 개인의 상호 연결성을 소중히 여기며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공님 덕분에 잊고 있던 청춘도 떠올리고 그 시절과는  또 다르게 네사람을 이해하게 되네요.

  • profile
    창공 2024.06.23 17:33

    저는 40대에 읽다가 포기한 책이었는데 20대에 벌써 접하셨으면 모네님은 저보다 한창 앞서가셨네요. 
    많은 것들이 살아보고, 나이가 들어 보니 인식 안으로 들어오는 것들이 많아,
    더 많은 것들이 기디라고 있을 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가끔은 나한테 주어진 시간이 참 부족하다라는 느낌이 든답니다.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접하거나 탐색하다가 이 세상을 뜨고 싶은 마음과 함께요. 

    그리고 죽기 전에 임택트 있는 책 한 권이라도 남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요. 

  • ?
    에코 2024.06.21 15:30

    아는 지인이 사회학 전공자인데, 사회학에 대해 잘 모르는 제가 어느날 사회학에서는 도대체 뭘 하느냐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한마디로 말하면 의미찾기래요. 인상적인 답변이었는데, 오늘 창공님의 글을 읽어보니 의미찾기에 대해 한번 더 살펴볼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아서 좋네요. 그런데 의미찾기라는 말은 의미가 자기 밖 어디에 있으니까 그것을 찾아야한다는 말로도 들리기도 해요. 그래서 의미찾기보다는 의미부여하기라는 말은 어떤지…요즘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해야되는 일보다 자기가 좋아서 추구하는 일에 관심이 많잖아요.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거창한 질문을 들을 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의미부여하면서 살아가기라고 답하면 어떨까요. 시대정신이 의미찾기에서 이제 각자 의미부여하기로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 profile
    창공 2024.06.23 17:52

    의미 찾기로 치자면 사회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특히, 인문학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 예술까지도요.

    예전에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제목의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내용은 나찌 수용소 내의 처참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버텨내는 유대인들의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그 참혹한 상황 속에도 불구하고 웃음 거리를 찾아내는 등, 초긍정적으로 살아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아요. 이렇게 비극적인 상황도 어떻게 받이들이냐에 따라 결과값이 달라지는 것은, 의미 부여에서 가능했다고 봅니다, 하여  '의미 부여'는 인간 생존의 필요 불가결의 요소가 아닐까힙니다.

    오늘도 의미를 만들기 위해 뭐를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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