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2024.07.09 16:19
<창칼 38> 내 안의 야만성을 찾아서
조회 수 434 추천 수 0 댓글 4
<창칼 38> 내 안의 야만성을 찾아서
(부제: 일상 속 야만 타파를 위한 코드)
최근에 “야만의 시대(링크)"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교회 조직의 힘을 빌려 인권 유린과 착취가 성행하던 중세의 참혹한 실상을 담은 한 프랑스 농노의 회고록이다. 이 회고록에서 농노 마르셀은 자선과 박애를 내세우는 성직자들이 가난한 농민에게 가혹할 정도로 많은 세금을 징수하거나 불행한 여성들을 마녀 사냥을 통해 동물적 쾌락에 탐닉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작태들을 폭로한다. 이를 통해, 종교를 내세워 표방했던 성스러움의 허상과 함께 중세의 여러 극단적인 야만적 시대상을 고발한다. 그 내용을 보자면 인류사에 이런 비극적 암흑기가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이다. 시스템과 관습이 그런 야만을 허용했던 시절이기에 일상에서 벌여지는 평범한 개인들의 야만적 만행들은 또 얼마나 심했을까.
그런데 이런 야만의 시대가 오래 전에 막을 내렸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위 같은 내용은 이제는 우리와 무관한 먼 옛날의 얘기에 불과한 걸까?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중세 이후에도 야만은 여러 형태로 인류의 역사에서 지속되어 왔고, 그 본질은 인류의 DNA에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야만에는 불합리한 사회제도, 지배자들의 폭력, 착취, 인권 유린, 권력 남용 외에도 평범한 일상에서 개인들이 보이는 폭력성, 극도의 이기심, 오만한 무례함, 무지막지한 뻔뻔함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런 야만의 시간들은 동물에서 인간으로의 진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순화되었지만, 과학과 기술이 진보하고 거대 문명을 이룬 현대에서도 여전히 도처에서 반복되고 있다. 곳곳에서 분쟁과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삶의 기반이 되는 정치 무대는 공익을 위한 경쟁과 협력 대신에 각 진영의 혼란한 이권 싸움장이 되고 있다. 비상식이 활개치는 일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사상가들이 미리 예견한 대로, 문명이 발전할수록 미개한 정신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미개한 정신의 확산은 사회 시스템이나 의료 산업 같은 거대 조직이 만들어 내는 부당한 착취와 만행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불합리하고 천박한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일상적인 야만적 행위에서도 드러난다.
일례로 고국에 갈 때마다 삶의 환경들이 더욱 삭막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는 경쟁을 최고 가치로 떠 받드는 신자유주의와 경쟁 교육의 영향인듯 하다. 학교는 어릴 때부터 경쟁과 능력주의에 입각해서 아이들을 성적과 입시 경쟁에 내몰다 보니 도덕성이 부재한 이기적인 아이들만 양산하고 있다. 사회에서는 남을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조가 만연되면서 예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연대 의식들도 다 사라졌다. 사회 전체가 상식보다는 이득을 최우선 가치로 두다 보니 사람들이 배타적이고 야만적인 삶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를 비판하고 정화해야 할 대부분의 언론들도 공정성과 사회적 정의는 안중에도 없고 이권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익집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물질에 대한 강박적 추구를 부추기는 천민 자본주의도 개인들의 야만을 부추기는 데 큰 한 몫을 하고 있다. 물질적 성공이 삶의 최우선 목표가 되면서 인간 관계는 경제적 이득의 도구로 전락하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을 자연스런 현상이 될 정도로 사람들은 야만스러움에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 이 가운데 소위 ‘갑질'로 표현되는 조금 가진 자들의 횡포와 만행은 굳이 언급해서 무엇하랴.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국가 지도자의 무지막지함은 정치적 혼란을 부추기고, 이는 서민들의 삶의 피폐로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야만의 시대를 도래시켰다. 지도자의 무능력과 무지는 사회 전체의 방향성을 잃게 만들어, 상식이 실종하고 비상식과 불합리가 만연하는 사회를 만들어 버렸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과도한 차별, 일상에서의 언어 폭력, 사람에 대한 무례함과 뻔뻔함 등이 너무나 흔한 일들이 되어 버렸다.
이런 살벌한 환경 속에서 넘치는 자극과 정보의 홍수는 이성적 사고의 온전한 작동을 방해하여 야만의 토양을 더욱 살 찌우는 것 같다. 과잉 자극과 편향된 정보의 홍수는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비이성적 판단과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들을 부추기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야만은 멀리 있지 않고 아주 가까이에 있다. 그것의 발현자는 멀리 갈 필요없이 이웃집 사람일 수 있고 직장 동료일 수 있고 내 친구일 수도 있다. 아니, 바로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그럼, 여전히 야만이 넘치는 이 시대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법은 없는 걸까? 물론, 제일 영향이 큰 사회 시스템의 변화가 중요하지만, 이는 거대한 숙제이므로 일단 차치해 두고 개인에 초점을 맞춰보는 게 단서의 핵심이 아닐까. 개인을 위한 기본적인 처방법의 3대 키워드는 지성과 양심, 그리고 성찰이라고 생각해보고 싶다.
지성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건 누구나 아는 바다. 아는 만큼만 보이고 아는 만큼만 이해하고 말할 수 있기에 지성의 정도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안목이 달라진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범위로 세상을 보고 그 범위 내에서 해석을 하다 보니 많은 이해 출돌과 고통이 따르고 있다. 2천년여 전에 무지는 모든 오해와 갈등과 고통의 근원이라고 어느 성인이 일갈했었다. 깊은 사고를 통해 안목을 넓히고 문제를 보다 크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지성의 연마야 말로 이권이 난무하는 이 어지러운 세상을 향해함에 있어 큰 나침반이 된다고 할 것이다.
양심은 누가 혹은 무엇이 우리에게 심어주는 거라기 보다는, 올바른 행동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게 하는 자발적인 도덕적 기준이다. 즉, 그것은 저 바닥에서 올라오는 자기 영혼의 목소리이다. 지성과 성찰이 부족하면 양심의 목소리는 숨어 버리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양심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지성과 성찰이 반드시 같이 동반되어야 한다. 무엇이 그르고 안 그런지는 다 갖고 있는 가치와 잣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경쟁이 기본이 되는 이 시대에서는 남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면서 본인의 이득을 챙기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바로 양심이라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찰과 자기 객관화를 위한 메타인지의 양성이다. 자기를 밖에서 보듯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힘이 메타인지인 바, 이는 자기 성찰력과 직결되는 부분이고 이는 동물과 인간을 구별해 주는 가장 중요한 바로미터이다. 불행하게도, 고국의 경쟁 이데올로기 중심의 교육은 메타인지를 기르는데 완전히 실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만과 오만에 가득찬 행동을 부추기고 야만을 일상화시키고 있다. 일상의 환경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쫓겨 사는 삶, 매달리는 삶, 관계나 일에 늘 치이는 부산한 삶 등은 마음의 여유를 고갈시켜 자기 성찰의 기회를 완전히 박탈한다. 그러니, 자주 자기만의 가처분의 시간을 확보해서 마음의 여유를 만들고 이를 통해 자기 성찰의 힘을 키워야한다. 그 성찰의 힘이 커져서 메타인지도 같이 자란다.
오늘도 내 안에 흐르는 야만성이 기지개를 펼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 야만이라는 충동은 내 성찰과 양심의 눈이 한 시라도 방심하는 순간 다시 뛰쳐 나올 것이다. 하여, 부대를 지키는 보초병의 심정으로 오늘도 나는 지성을 연마하고 양심을 작동시키고, 매 순간 메타인지의 날카로운 날을 갈아 성찰의 깊이를 더 해 본다.
(사진 출처: 구글 사진 (링크))
-
인성과 지성의 부조화에 대한 지적이 있어, 생각해 봤습니다.학교 다닐 때, 지.덕.체라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컸는데, 여기서 덕성이 바로 인성이겠죠.무엇보다도, 몸의 건강(=체)이 무너지면 지성도 덕성도 같이 무너지니,몸을 온전히 지키고 난 후에야 지성이 됐든 덕성이 됐든 그게 가능하기에, 신체 활동의 중요성이 절실해지는 때입니다.오늘도 묵묵히 꾸준하게 걷는 분들이야 말로 지.덕의 행운이 같이 펼쳐지리라 믿습니다다.
-
기술이 현대 인간 생활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서 모르는 사이에 ‘‘야만(la Barbarie)'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자가 있습니다.바로 미셀 앙리(Michell Henry)입니다. 그의 책 “야만(링크)"에서, 그는 기술적 합리성이 사회와 문화를 지배하고 인간성을 소외시키고 파괴하는 것이 야만의 실행이라고 주장 합니다. 인간 생활에 기술이 전면적으로 확산되면서 교육의 기계화, 노동의 비인간화, 문화의 상품화, 정치와 사회의 조작이 심해지고 인간 관계가 심하게 변질되고 있는 걸 경고합니다.야만을 통해 파괴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인간의 내면적 경험과 감정, 주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잃어버리고 있는 인간의 내면적 삶을 회복하여, 억압된 주체성과 비판의식 그리고 자유를 되찾아야 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는 교육의 인간화, 노동의 인간화, 공동체의 회복 등을 실제적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앙리는 이러한 대안들을 통하여 기술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와 의미를 되찾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단순하게 말하면, 주체성 회복을 통하여 인간성을 되찾아 (기술이 전파하는) 야만성을 극복하라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
?
여기 댓글 에서 아리송님이 나가신것 같은데 창공님도 현 시점에서 이런 글은 읽는이에 따라 느낌이 틀릴수 있으니 삭제 하는게 좋을것 같네요 시간이 조금 지난후 ~~~ ^^
-
?
여기 개똥 철학은 이제 고마 연제 했으면 하는 저 개인의 의견 입니다 제가 염려 하는건 우리 베산엔 윗 산우님 부터 밑에 계신 산우님 까지 여러 분 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런 글 은 어린 학생 들께 하는글로 생각되어 이제 도저히 짜증나 의견을 여러산우님들께 제시 하는 바 입니다 ( 창칼 연제 도 포함 )
1. 고마 처 내려 뿌라
2. 쓰던 말던 놔 두 라
-
NEW
OPUS-I & II
흔한 내 사무실 풍경이다. Whiteboard를 종횡부진 누비며 머리 속에 생각을 끄적이다 보면 실마리가 잡힐 때가 있다. 이 날은 새로 구한 marker도 시험해 볼 겸 총 천연색으로 휘갈기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점점 엉키고 있었... -
오늘은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의 내일을 꿈꿔 봅니다
3년전쯤으로 기억합니다. 이스트 시에라의 McGee Pass 로 들어가 JMT 를 타고 남행하여 Mono Pass 로 나오는 45마일 정도의 백팩킹 계획이었습니다. 둘째날 McGee Pass (12, 300ft) 를 넘는데 6월중이라 그런지 패스 부근에 제법 많은양의 눈이 있었고 눈을 헤... -
<창칼 38> 내 안의 야만성을 찾아서
<창칼 38> 내 안의 야만성을 찾아서 (부제: 일상 속 야만 타파를 위한 코드) 최근에 “야만의 시대(링크)"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교회 조직의 힘을 빌려 인권 유린과 착취가 성행하던 중세의 참혹한 실상을 담은 한 프랑스 농노의 회고록이다. 이 회고록에서 ... -
소주 마시고 가출해 여행을 해야하는 이유.
이른 아침을 먹고 장거리 운전에 나선다. 며느리의 유일한 자매 여동생의 결혼식이 July 4th 연휴에 LA에서 열린다. 곧 태어날 손주를 위해 며느리도 좀 챙겨야 할거 같고 LA 사는 오랜 지인도 이번에 만나 회포도 좀 풀어야 할거 같아 좀 일찍 출발해 LA에 일... -
<창칼 36>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얄팍함
<창칼 36>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얄팍함 그리고 무게감 남자는 가벼운 연애를 좋아해서 한 여자말고도 또 다른 여자와도 만나 연애를 즐기고, 그를 좋아하는 여자는 그 남자만 바라보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펼친다. 또 다른 남자는 한 여자에 대한 순수한 이상적... -
단오와 히레사케
목표는 북악산 팔각정이었다. 화창한 주말 봄 날씨에 어두운 집에서 뒹굴 수는 없었다. 아침 일찍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선글라스와 선크림으로 얼굴을, UV 차단 토시로 노출된 팔을 완벽하게 가렸다. 물안개가 피어오른 양재천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속도를 ... -
<창칼 33> 어쩌면 악한 사람은 아주 가까이에 있을지 모른다
<창칼 33> 어쩌면 악한 사람은 아주 가까이에 있을지 모른다 (부제: ‘악’에 대한 두 개의 시선) 살아가다 보면 평범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한테서 예기치 않게 가혹한 화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게 배신이든 억울한 누명이든. 이와는 좀 다르지만, 주어... -
개기 일식과 달
이번 개기일식을 관측하신 오가닉님 일행을 멀리서 축하하며 예전 달에 대해 잡설을 푼 것을 다음 link에 소개합니다. 달에 대한 단상 이 중에서 개기 일식과 관련된 것은 이 부분입니다. 지구에서 해와 달의 크기는 같아 보입니다. 이는 지구로부터 해까지 거... -
<창칼 30> 30회 특집 인터뷰
<창칼 30> 30회 특집 인터뷰 2023년 상반기 때 시작된 창공칼럼(창칼)이 벌써 30회를 맞았습니다. 30회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특별 인터뷰를 진행해 봤습니다. 호기심녀: 지난번 <창칼 18>에 이어 아주 특별한 인터뷰를 제가 다시 맡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간 <... -
<창칼 27> 제 눈에 안경과 정신 승리
<창공칼럼 27> 제 눈에 안경과 정신 승리 하루 전에 국민 가수 이효리가 국민대 졸업식에서 연설을 해서 많은 이목을 끌었다. 그의 단촐한 연설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대학 졸업생들에게 던진 한 마디는 “살면서 누구의 말도 듣지도 믿지도 말고, 자신만을... -
<창칼 23> 물 흐르듯 거침없이
<창칼 23> 물 흐르듯 거침없이 모든 과정이 착오없이 물 흐르듯이 진행된 10일 간의 차박 로드 여행, 그 여행의 마지막 날에 차 안에서 우연히 류시화 시인의 페이스북 글을 보게 됐다. 시기적절하게도 그 글에는 이번 여행과 관련 내 심정을 대변하는 내용이 ... -
<창칼 22> 로드와 여섯 친구들과의 만남
<창칼 22> 로드와 여섯 친구들과의 만남 12월 23일, 캘리포니아 Monterey에서 출발하여 10일간의 홀로 차박 로드 트립을 시작한다. 이번 여행은 데쓰 밸리(Death Valley), 후버 댐(Hoover Dam), 밸리 어브 파이어(Valley of Fire), 글렌 캐년(Glen Canyon), 호... -
<창칼 20> 발바닥 사랑과 별과 팔레스타인
<창칼 20> "발바닥 사랑"과 "별"과 "팔레스타인" 산악인들에게 발은 생명이다. 산을 오를 때 머리가 몸을 인도하고 마음이 또 따라줘야 하겠지만, 결국 오르는 주체는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나의 발과 다리인 것이다. 아무리 머리로 생각하는 산행 계획이나 목... -
<창칼 19> 짜라퉁은 이제 짐 싸고 물러가라!
<창칼 19> 짜라퉁은 이제 짐 싸고 물러가라! 부제: 지혜완성의 핵심 매뉴얼(= 반야심경)과 자연과학의 만남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 : 반야 = 지혜; 바라밀 =완성; 심 = 핵심; 경 = 메뉴얼) 최근에 양자 물리학, 상대성 이론, 우주과학, 그리고 ... -
<창칼 16> 별(別)얘기 아닌 별 이야기
<창칼 16> 별(別)얘기 아닌 "별" 이야기 때는 지난 주 금요일 밤 9시, 장소는 집에서 230마일(=370 km) 떨어지고, 해발 6천피트(=1900m) 이상 올라간 세코야 국립 공원(Sequoia National Park) 내의 어느 한 지점. 차박을 같이 하기로 한 동료 산악인의 차는 ... -
(가상현실) 분쟁조정 위원회 회의
분쟁 조정 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언제?: 예수탄생으로부터 2023년이 되는해 9월말 스산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 저녁 어디서?: 사노제, 캘리포니아 분쟁 당사자 거주지 자택 무엇을?: 사기결혼 어떻게?: 과학적, 논리적 근거없이 무조건 까발려 주장하기 왜?: 조... -
<창칼 15> 길들여지길 거부하고 거친 야성으로 사는 자여, 그대는 누구인가?
<창칼 15> 길들여지길 거부하고 거친 야성으로 사는 자여, 그대는 누구인가? <부제>: 꼰대와 초인의 경계에 서서 < 밤에는 태양을 보고 낮에는 별들을 품으며, 한 겨울의 눈을 뚫고 거친 바위 위에서 꽃을 틔우는 이름모를 풀꽃이여, 그 거친 숨결을 내가 흠모... -
Bay 12景
어제 못 본 Mission Peak 보름달을 아쉬워하다 bay 지역의 그 외 아름다운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제 맘대로 화투에 비견하여 Bay 12경을 선정해 보았습니다. 명절인데 화투너머로 가족과 함께 오고 가는 금전 속에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1월 제가 좋... -
<창칼 14> 짜라퉁은 다시 이렇게 웃겼다
<창칼 14> 짜라퉁은 다시 이렇게 웃겼다 <부제>: 꼰대에서 '초인'으로 꼰대마을 광장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짜라퉁(Zarathung) 도사가 140년 만의 긴 침묵을 깨고 노고도(No-godot) 산에서 하산을 했다. 이전에도 홀연히 세상에 등장하여 3년 간... -
누굴 진짜 꼰대로 아나??
누굴 진짜 꼰대로 아나 창공님이 올리신글 “나도 꼰대라고?” 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흔히들 꼰대라고 지칭하는 기준은 Who: 내가 누군지 알아 When: 나때는 말이야 Where: 어디서 감히 What: 내가 무엇을 Why: 내가 그걸왜 ? How: 어떻게 감히 라는 논리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