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2024.11.22 00:01

OPUS-I & II

profile
YC
조회 수 31 추천 수 1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흔한 내 사무실 풍경이다.
Whiteboard를 종횡부진 누비며 머리 속에 생각을 끄적이다 보면 실마리가 잡힐 때가 있다.
이 날은 새로 구한 marker도 시험해 볼 겸 총 천연색으로 휘갈기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점점 엉키고 있었다.

whiteboard.jpg

 

잠깐 쉬는 중에 구글 포토에서 예전 추억 사진이라고 추천을 해 준다.
사진은 아니고 예전에 큰 놈이 태어난 지 100일 정도 되었을 때 자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한참 울다가 곤하게 자는 모습에 간만에 연필을 들어 그렸었다.
갓난아기는 머리카락도 별로 없다는 것도, 잠을 정말 많이 잔다는 것도, 여러가지를 모르던 초보 아빠 시절이었다.
그 때 무슨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그려서 그랬는지, 다 그리고 나서 제목을 "OPUS"라고 거창하게 붙였다.

opus-I.jpg

 

세월이 흘러 둘째가 태어났다. 이 놈도 어느 날 문득 그려 보았다.
제목은 OPUS-II로 하고 첫째의 그림은 OPUS-I으로 제목을 바꾸었다.

opus-II.jpg

 

둘이 좀 컸을 때는 둘을 같이 그려 본 적이 있다.
그림은 참 묘한 것 같다. 지금도 이 그림을 그렸던 시간 장소 주변 사람 냄새까지 기억나는 것 같다.

Mechelen.jpg

 

간혹 사람들이 내 카톡 프로필 사진이 뭐냐고 묻는데 이 그림들이다.
굳이 내 사진을 올리기는 싫고 그러나 내 정체성은 보이고 싶어 선택한 것이다.

얼마 전에 내 생일 날이었다.
두 놈 다 멀리 있어 오지는 못하고 은근 전화라도 하겠지 기대하고 있었다.
작은 놈이 먼저 전화가 왔다.
역시 어릴 때부터 나와는 다르게 정이 많은 놈이구나 생각하고 기쁘게 받았다.
생일 축하와 내 안부를 묻더니, 평소와 다르게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 말을 한다.
여자 친구를 새로 사귀었다고 해, 잘 되었구나 하니, 내일 데이트를 가야 한다며 조언을 구한다.
그런 걸 왜 아빠한테 묻는지, 이상하다.

그리고 깨달었다. 
데이트 비용이 부족하냐고 물었다.
친구들과 같이 사는 아파트 전기 수도 요금이 많이 나와 별로 통장 잔고가 없다는 기막힌 논리를 전개하기 시작한다.
생일 축하 전화도 받았겠다, 용돈 보내 줄 테니 데이트 잘 하라고 기분 내고 전화를 끊었다.
1000 달러를 보내 주고 나서, 큰 놈은 전화 안 오나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 놈이 요새 회사에서 보너스를 잘 받았다고 하니 혹 선물이라도 보내겠다고 하면 지난 번 준 위스키도 많이 남았으니 괜찮다고 우아하게 사양할까 고민을 좀 해 보았다.
조금 있다 큰 놈에게서 문자가 왔다.

    생신 축하합니다. 건강하세요.
    그리고 이모티콘.

그게 다였다.
원래 따뜻하거나 친절한 성품은 아니지만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약간 부아가 나기도 하고 그 깐깐한 녀석이 문자라도 보낸 것이 대단하지 않은가 합리화를 하기도 했다.
예전부터 아이들은 어렸을 때 많이 웃어준 것으로 키워준 보답은 다 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좀 서운하기는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두 놈들이 다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어디 가서 삥 뜯길 일은 없을 것 같고 둘째는 어디에서도 빌붙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날 사무실에서 whiteboard를 지우고 얼마 전에 본 프로펠러 비행기를 그렸다.
이제 내가 보살펴 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세상을 잘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airplane.jpg

 

 

 

이렇게 나는 생일 날 돈 있는 첫째에게 까임을 당하고 돈 없는 둘째에게 삥을 뜯겼다.

  • profile
    창공 9분 전

    아무리 거장들이 위대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냈다지만, 자식만큼 위대한 작품이 또 있을까요? 베에토벤의 작품 번호 67번, 교향곡 번호 5번인 ‘운명’도 운명처럼 주어진 나의 자식만큼 위대할까요? 하여, 자식 새끼를 오퍼스 원, 오퍼스 투로 이름을 매긴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아무나 쉽게 생각지 못했던  위대한 발상인 것 같아요. 소인이라서 그런지 저는 그런 발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역시 와이씨님은 측면적 사고(lateral thinking)가 풍부하신 분이시군요. 이전에도 그런 적이 있지만, 가끔 님의 창의성에 놀랍니다 . 작품 번호 1번과 2번으로 님의 인생은 찬란했다고 여겨지고 앞으로도 빛날 거라고 믿습니다. 덕분에 저의 경우도 작품 번호 1번의 존재도 깨닫게 됐습니다. 


    사무실 회이트 보드 위에 발상이 종횡무진으로 흐르는 (저는 당최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낙서장을 보면서 오늘도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서 기발한 문제 해결을 이루는 좋은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1. NEW

    OPUS-I & II

    흔한 내 사무실 풍경이다. Whiteboard를 종횡부진 누비며 머리 속에 생각을 끄적이다 보면 실마리가 잡힐 때가 있다. 이 날은 새로 구한 marker도 시험해 볼 겸 총 천연색으로 휘갈기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점점 엉키고 있었...
    Date2024.11.22 Category기타 ByYC Reply1 Views31 Votes1 newfile
    Read More
  2. 오늘은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의 내일을 꿈꿔 봅니다

    3년전쯤으로 기억합니다. 이스트 시에라의 McGee Pass 로 들어가 JMT 를 타고 남행하여 Mono Pass 로 나오는 45마일 정도의 백팩킹 계획이었습니다. 둘째날 McGee Pass (12, 300ft) 를 넘는데 6월중이라 그런지 패스 부근에 제법 많은양의 눈이 있었고 눈을 헤...
    Date2024.10.13 Category기타 By보해 Reply14 Views420 Votes3 file
    Read More
  3. <창칼 38> 내 안의 야만성을 찾아서

    <창칼 38> 내 안의 야만성을 찾아서 (부제: 일상 속 야만 타파를 위한 코드) 최근에 “야만의 시대(링크)"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교회 조직의 힘을 빌려 인권 유린과 착취가 성행하던 중세의 참혹한 실상을 담은 한 프랑스 농노의 회고록이다. 이 회고록에서 ...
    Date2024.07.09 Category기타 By창공 Reply4 Views434 Votes0 file
    Read More
  4. 소주 마시고 가출해 여행을 해야하는 이유.

    이른 아침을 먹고 장거리 운전에 나선다. 며느리의 유일한 자매 여동생의 결혼식이 July 4th 연휴에 LA에서 열린다. 곧 태어날 손주를 위해 며느리도 좀 챙겨야 할거 같고 LA 사는 오랜 지인도 이번에 만나 회포도 좀 풀어야 할거 같아 좀 일찍 출발해 LA에 일...
    Date2024.06.29 Category기타 By보해 Reply10 Views290 Votes0 file
    Read More
  5. <창칼 36>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얄팍함

    <창칼 36>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얄팍함 그리고 무게감 남자는 가벼운 연애를 좋아해서 한 여자말고도 또 다른 여자와도 만나 연애를 즐기고, 그를 좋아하는 여자는 그 남자만 바라보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펼친다. 또 다른 남자는 한 여자에 대한 순수한 이상적...
    Date2024.06.20 Category기타 By창공 Reply9 Views240 Votes0 file
    Read More
  6. 단오와 히레사케

    목표는 북악산 팔각정이었다. 화창한 주말 봄 날씨에 어두운 집에서 뒹굴 수는 없었다. 아침 일찍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선글라스와 선크림으로 얼굴을, UV 차단 토시로 노출된 팔을 완벽하게 가렸다. 물안개가 피어오른 양재천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속도를 ...
    Date2024.06.02 Category기타 ByYC Reply7 Views177 Votes3 file
    Read More
  7. <창칼 33> 어쩌면 악한 사람은 아주 가까이에 있을지 모른다

    <창칼 33> 어쩌면 악한 사람은 아주 가까이에 있을지 모른다 (부제: ‘악’에 대한 두 개의 시선) 살아가다 보면 평범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한테서 예기치 않게 가혹한 화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게 배신이든 억울한 누명이든. 이와는 좀 다르지만, 주어...
    Date2024.04.29 Category기타 By창공 Reply5 Views265 Votes1 file
    Read More
  8. 개기 일식과 달

    이번 개기일식을 관측하신 오가닉님 일행을 멀리서 축하하며 예전 달에 대해 잡설을 푼 것을 다음 link에 소개합니다. 달에 대한 단상 이 중에서 개기 일식과 관련된 것은 이 부분입니다. 지구에서 해와 달의 크기는 같아 보입니다. 이는 지구로부터 해까지 거...
    Date2024.04.08 Category기타 ByYC Reply3 Views126 Votes0
    Read More
  9. <창칼 30> 30회 특집 인터뷰

    <창칼 30> 30회 특집 인터뷰 2023년 상반기 때 시작된 창공칼럼(창칼)이 벌써 30회를 맞았습니다. 30회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특별 인터뷰를 진행해 봤습니다. 호기심녀: 지난번 <창칼 18>에 이어 아주 특별한 인터뷰를 제가 다시 맡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간 <...
    Date2024.03.29 Category기타 By창공 Reply7 Views219 Votes0 file
    Read More
  10. <창칼 27> 제 눈에 안경과 정신 승리

    <창공칼럼 27> 제 눈에 안경과 정신 승리 하루 전에 국민 가수 이효리가 국민대 졸업식에서 연설을 해서 많은 이목을 끌었다. 그의 단촐한 연설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대학 졸업생들에게 던진 한 마디는 “살면서 누구의 말도 듣지도 믿지도 말고, 자신만을...
    Date2024.02.14 Category기타 By창공 Reply3 Views243 Votes1 file
    Read More
  11. <창칼 23> 물 흐르듯 거침없이

    <창칼 23> 물 흐르듯 거침없이 모든 과정이 착오없이 물 흐르듯이 진행된 10일 간의 차박 로드 여행, 그 여행의 마지막 날에 차 안에서 우연히 류시화 시인의 페이스북 글을 보게 됐다. 시기적절하게도 그 글에는 이번 여행과 관련 내 심정을 대변하는 내용이 ...
    Date2024.01.02 Category기타 By창공 Reply9 Views247 Votes0 file
    Read More
  12. <창칼 22> 로드와 여섯 친구들과의 만남

    <창칼 22> 로드와 여섯 친구들과의 만남 12월 23일, 캘리포니아 Monterey에서 출발하여 10일간의 홀로 차박 로드 트립을 시작한다. 이번 여행은 데쓰 밸리(Death Valley), 후버 댐(Hoover Dam), 밸리 어브 파이어(Valley of Fire), 글렌 캐년(Glen Canyon), 호...
    Date2023.12.22 Category기타 By창공 Reply31 Views445 Votes0 file
    Read More
  13. <창칼 20> 발바닥 사랑과 별과 팔레스타인

    <창칼 20> "발바닥 사랑"과 "별"과 "팔레스타인" 산악인들에게 발은 생명이다. 산을 오를 때 머리가 몸을 인도하고 마음이 또 따라줘야 하겠지만, 결국 오르는 주체는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나의 발과 다리인 것이다. 아무리 머리로 생각하는 산행 계획이나 목...
    Date2023.12.01 Category기타 By창공 Reply8 Views176 Votes1 file
    Read More
  14. <창칼 19> 짜라퉁은 이제 짐 싸고 물러가라!

    <창칼 19> 짜라퉁은 이제 짐 싸고 물러가라! 부제: 지혜완성의 핵심 매뉴얼(= 반야심경)과 자연과학의 만남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 : 반야 = 지혜; 바라밀 =완성; 심 = 핵심; 경 = 메뉴얼) 최근에 양자 물리학, 상대성 이론, 우주과학, 그리고 ...
    Date2023.11.14 Category기타 By창공 Reply5 Views216 Votes0
    Read More
  15. <창칼 16> 별(別)얘기 아닌 별 이야기

    <창칼 16> 별(別)얘기 아닌 "별" 이야기 때는 지난 주 금요일 밤 9시, 장소는 집에서 230마일(=370 km) 떨어지고, 해발 6천피트(=1900m) 이상 올라간 세코야 국립 공원(Sequoia National Park) 내의 어느 한 지점. 차박을 같이 하기로 한 동료 산악인의 차는 ...
    Date2023.10.21 Category기타 By창공 Reply14 Views248 Votes0 file
    Read More
  16. (가상현실) 분쟁조정 위원회 회의

    분쟁 조정 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언제?: 예수탄생으로부터 2023년이 되는해 9월말 스산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 저녁 어디서?: 사노제, 캘리포니아 분쟁 당사자 거주지 자택 무엇을?: 사기결혼 어떻게?: 과학적, 논리적 근거없이 무조건 까발려 주장하기 왜?: 조...
    Date2023.10.18 Category기타 By보해 Reply6 Views170 Votes0 file
    Read More
  17. <창칼 15> 길들여지길 거부하고 거친 야성으로 사는 자여, 그대는 누구인가?

    <창칼 15> 길들여지길 거부하고 거친 야성으로 사는 자여, 그대는 누구인가? <부제>: 꼰대와 초인의 경계에 서서 < 밤에는 태양을 보고 낮에는 별들을 품으며, 한 겨울의 눈을 뚫고 거친 바위 위에서 꽃을 틔우는 이름모를 풀꽃이여, 그 거친 숨결을 내가 흠모...
    Date2023.10.13 Category기타 By창공 Reply7 Views360 Votes0 file
    Read More
  18. Bay 12景

    어제 못 본 Mission Peak 보름달을 아쉬워하다 bay 지역의 그 외 아름다운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제 맘대로 화투에 비견하여 Bay 12경을 선정해 보았습니다. 명절인데 화투너머로 가족과 함께 오고 가는 금전 속에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1월 제가 좋...
    Date2023.10.01 Category기타 ByYC Reply6 Views224 Votes0 file
    Read More
  19. <창칼 14> 짜라퉁은 다시 이렇게 웃겼다

    <창칼 14> 짜라퉁은 다시 이렇게 웃겼다 <부제>: 꼰대에서 '초인'으로 꼰대마을 광장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짜라퉁(Zarathung) 도사가 140년 만의 긴 침묵을 깨고 노고도(No-godot) 산에서 하산을 했다. 이전에도 홀연히 세상에 등장하여 3년 간...
    Date2023.09.26 Category기타 By창공 Reply18 Views408 Votes0 file
    Read More
  20. 누굴 진짜 꼰대로 아나??

    누굴 진짜 꼰대로 아나 창공님이 올리신글 “나도 꼰대라고?” 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흔히들 꼰대라고 지칭하는 기준은 Who: 내가 누군지 알아 When: 나때는 말이야 Where: 어디서 감히 What: 내가 무엇을 Why: 내가 그걸왜 ? How: 어떻게 감히 라는 논리구조...
    Date2023.09.08 Category기타 By보해 Reply8 Views316 Votes0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